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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한국의 오랜 관계를 아시나요?

K뷰티전도사 2025. 5. 27. 12:46

고대에는 한 왕국이 무너지고, 그 왕족이 다른 나라로 망명해 귀화했다면,

이건 단순한 기록이 아닌 한 편의 대서사시일지도 모릅니다.

그 주인공은 13세기 베트남의 왕자 ‘이용상(李龍祥)’, 그리고 그가 고려에 정착하여 해주이씨의 시조가 된 이야기입니다.

이 믿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은,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문화적 연결고리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리(Ly) 왕조의 몰락, 쩐(Tran) 왕조의 등장

12세기 말, 당시 베트남은 리 왕조(李朝)가 200여 년간 번영을 누린 후 혼란기를 맞습니다.

결국 1225년, 쩐 왕조(陳朝)가 쿠데타를 통해 왕위를 찬탈했고, 리 왕실은 박해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왕족이자 군사 지휘관이었던 이용상(베트남 이름 Lý Long Tường)은 가족과 충신 수백 명과 함께 망명을 결심합니다.

그들은 중국으로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서, 지금의 황해도 옹진군 창진도라는 섬에 표류하게 됩니다.

 

당시 이 사실을 보고 받은 고려 고종은 "내 자손도 훗날 만일 저 같은 일을 당하면, 이 공자와 무엇이 다르겠느냐?"라고 말하며, 이 대월국의 왕자를 기꺼이 받아들여 식솔들이 지낼수 있는 식업을 마련하여 주게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고려는 몽골의 침략을 앞두고 불안정한 시기였지만, 고종은 이 왕족 일행을 관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용상은 황해도 해주 지역에 정착하여, 지역 방어와 군사 훈련에 큰 기여를 했고,

몽골 침입 당시에는 성을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고려인이 된 베트남 왕자

이용상과 그 후손들은 고려 조정의 신뢰를 얻으며 귀화했고, 그들의 본관은 화산이씨로 정해졌습니다.

이로써 오늘날의 화산이씨 가문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가문은 단순히 외국 출신 인물의 후손이 아니라, 왕족 출신으로서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켜낸 존재들입니다.

오늘날 해주이씨 후손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베트남에서 왔다는 사실을 기록과 족보로 보존하고 있으며, 일부는 베트남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도 기억되는 이용상

흥미롭게도, 베트남 역시 이용상을 ‘리 롱 뜨엉(Lý Long Tường)’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조국을 떠났지만 명예를 지킨 왕족, 정의롭고 지혜로운 장군으로 추앙받습니다.

 

베트남 북부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와 전승 설화, 심지어 교육 자료도 존재할 정도로, 이용상은 양국이 공유하는 역사적 인물입니다.

천년의 인연이 오늘까지

이 이야기의 가장 큰 흥미는, 그것이 단지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현대에도 한국과 베트남은 경제·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고, 양국 간 국제결혼, 유학생, 기업 진출이 활발한 현실에서 이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베트남 왕자가 한국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한민족의 포용성과 동아시아의 연결성, 그리고 우리 뿌리의 다양성을 일깨워줍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이 오래된 인연은 분명 우리가 오늘 더 깊이 이해하고 이어가야 할 이야기입니다.